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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이불비(周而不比) : 넓게 사귀되 패거리 짓지 않아

에픽하이 2011. 1. 13. 09:14

주이불비(周而不比) : 넓게 사귀되 패거리 짓지 않아

공자는 덕치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지도자를 君子로 보았다. 논어가 추구하는 인재상을 한 마디로 하면 군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논어 첫머리에서도 군자에 대해 "인불지불온(人不知不慍)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닌가“라고 언급한 바 있다. 군자의 반대는 小人이다. 그런데 이때는 소인이란 표현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공자가 군자와 소인을 대조적으로 직접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군자주이불비(君子周而不比), 소인비이불주(小人比而不周) : 군자는 사람을 넓게 사귀되 패거리를 짓지 않고 소인은 패거리를 지을 뿐 사람을 넓게 사귀지 않는다.”

사람의 그릇의 크기를 가늠하는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넓게 사귀면서도 패거리를 짓지 않은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바로 원칙이 있어야 한다. 원칙이 있으면 사사로운 이익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대인관계에서 있어서도 불가근불가원이 가능하다.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군자가 명분을 중시하는 이유도 바로 원칙을 따르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군자는 또한 두루 넓게 사귈 수 있어야 한다. 자신과 수준이 다른 사람끼리도 사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보편적인 사랑이 있어야 한다. 원칙이 냉철한 두뇌라면 사랑은 뜨거운 가슴이다. 정치는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없이는 사람을 두루 사귈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소인은 어떠한가. 이익을 좇다보니 이익이 될 때는 간이라도 빼줄 듯 가까운 관계가 되지만 이익이 되지 않으면 냄비처럼 열정이 식고 만다. 어제까지 평생 동지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이해관계가 틀어지면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권력을 좇아 맺은 인연은 권력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가하면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끼리끼리 뭉쳐서 사회에 악을 끼치는 집단도 모두가 비이불주(比而不周), 즉 패거리를 짓되 넓게 사귀지 못하는 소인들의 심성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공자가 설파한 周而不比의 정신은 오늘날 더욱 요구되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우선 조직구조가 수평적인 관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에서는 수직적인 구조였기에 周而不比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수평조직에서는 대화가 중요하다. 그래야 협조성과 창의성이 살아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조직이 학연, 혈연, 지연, 또는 어떤 관계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면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이루기 어렵다. 더욱이 지식사회는 네트워크 사회가 아닌가.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되 관련분야도 두루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된다.
공부하는 모임인 인간개발연구원 회원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들으며 학습하는 기쁨을 나누고 있다. 벌써 32년 동안 매주 새벽을 깨워온 회수가 1500회를 넘어섰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와 그 때 그 때의 이슈를 좇아 강의를 하고 질문을 받고 응답을 한다.
코리아나 화장품의 유상옥 회장은 “30년 동안 최고경영자로서 기업을 이끌어 올 수 있었던 지혜가 다양한 강사들의 새벽 강의를 듣고 기업에 적용한 덕택이다”고 설명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강의를 통해 세상을 넓게 보는 지혜가 형성된 것이다. 그야말로 주이불비의 훈련을 철저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또 이종기업동우회가 있어서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교제를 나누며 상대방을 이해하면서 친목을 다지는 모습을 본다. 인간개발연구원이야말로 周而不比의 정신이 실천되고 있는 현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周而不比의 정신은 기업의 인사평가에서도 그대로 요구되고 있다. 과거에는 상사가 부하를 일방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면평가를 하고 있다. 자기가 자신을 평가하고 상사가 평가할 뿐만 아니라 동료, 고객, 부하가 평가를 하기 때문에 360도 평가라고 부른다.
이제 어느 한 쪽에서만 좋은 평가를 받아서는 능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상사 동료 부하 고객으로부터 골고루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周而不比의 정신이 필요하다. 게다가 요즈음에는 섬기는 리더십까지 등장했다. 숙명여대의 이경숙 총장은 지식정보사회의 리더십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섬김리더십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직선총장으로 네 번이나 당선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그 비결을 섬기는 리더십에서 찾고 있다.
“대학에서 총장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다. 교수와 직원과 학생을 섬기며 봉사하는 자리이다. 군림하는 자리라면 한 번의 임기로 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섬긴다고 생가하기 때문에 네 번까지 교수들이 뽑아주어서 더욱 섬기는 자세로 일을 하고 있다.”
또한 그는 신임교수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여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었으니 섬김을 받고 싶겠지만 우리 대학은 섬기는 대학이니 직원과 학생들을 섬기면 섬김을 받게 될 것이다”고 말한다.
이제 리더는 수직적인 구조에서 가졌던 권위주의적인 입장에서 탈피하여 구성원들을 도와주고 지원하고 나아가 섬긴다는 자세를 견지할 것을 요구할 정도로 주이불비의 정신이 강조되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지식이 많지만 교만해 보이지 않아야 한다. 높은 자리에 있지만 겸손해 보여야 한다. 돈이 많지만 과시하지 말아야 한다. 바쁜 자리에 있지만 바쁘게 보이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것들이 周而不比정신이 배어난 몸가짐이리라.
2500년 전에 제시한 공자의 가르침이 오늘날 더욱 실감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논어를 공부하는 기쁨과 감동이 더욱 밀려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한 번 스스로 체크해 보자. 어느 쪽에 가까운지를. “나는 周而不比형인가 아니면 比而不周형인가?”

출처 : 강릉예찬
글쓴이 : msjoo3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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