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산20 제5대 집행부 주관 제7차 월악산 국립공원 탐방산행]
◆ 산행일시 : 2016년 8월 13일(토)
◆ 산행장소 : 월악산 영봉(靈峰), (해발고도 1.097m)
◆ 산행코스 : 동창교 -> 자광사 -> 서낭당 -> 송계삼거리 -> 영봉
-> 송계삼거리 -> 자광사 -> 동창교 (원점 회귀 코스)
◆ 산행출발 동창교(오전 10:40) -> 송계삼거리(12:40) -> 점심식사 40분
식사후 출발(13:30) -> 영봉 정상 도착(14:10) -> 하산 시작(14:30)
-> 동창교 하산 완료(16:20)
◆ 총 산행 소요시간 : 5시간 40분
▣ 날씨 : 맑음, 폭염주의보 발동 (36도)
▣ 산행거리 : 총 8.6km, (실산행시간 3시간46분, 2.3km/h)
◆ 참석회비 : 40.000원(부부 70,000원)
◆ 출발장소: 1호차 서초구청(06:40)-> 죽전정류장(07:00)
2호차 의정부 장암역(05:30)->고양 마두역1번출구(06:00)
♣ 중식 : 개인준비 ♣ 석식(뒤풀이) : 산악회 준비
◆ 국립공원 순례 참석 인원 : 총 55명
★ 월악산 영봉 산행 참석자 23명(남18명, 여5명)
전창덕 부부, 이기룡 부부, 이봉태 부부, 이영언 부부, 이우장 부부,
홍영욱, 최용근, 박원기, 이명철, 조규호, 송관재, 유권영, 양효용,
이광호, 김태환, 김환식, 장영근, 오현방,
★ 계곡길 트레킹 및 덕주사 마애불 탐방자 32명
이성오 산악대장, 이영호 사무국장 외 ~
◆ 기타 참조사항 # 뒷풀이 식당 : 느티나무집 (송어회정식)
글: 양 효용 / 사진: 최 용근, 장 영근, 곽 상일, 양 효용
[폭염 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오른 월악산 영봉]
브라질 리오(Rio) 올림픽 경기를 보느라 두어 시간 밖에 잠들지 못하고 일어나 산행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집을 나서서 죽전 정류장에 도착하니 오전 6시 50분이었다. 연휴 첫날이라 그런지 죽전 정류
장에서 관광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처서가 지난 8월의 둘째 주임에도 폭염으로 들
끓는 기록적인 무더위는 계속 되었고 아침 공기는 후텁지근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아침 소나
기라도 시원하게 뿌려주면 좋으려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뜨거운 햇볕과 높은 습기만을 가득 품고 있
었다. 하지만 월악산 정상인 영봉을 오르려는 녹산 산우들의 끈끈한 열정은 그 보다 더 뜨거웠다. 폭
염주의보도, 살인적으로 가파른 영봉의 된비알(가파른 고갯길)도 녹산 산우들의 우정과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영험스런 봉우리, 영봉의 등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또 하나의 기록과 뚜렷한 흔적과 아름다
운 산행의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녹산 산악회 단독 행사로써는 역대 최다(最多)인 55명의 인원이 참
석하여 대형버스 2대가 동원 되었다. 4,5일 전까지만 해도 총 61명이었는데 주말 폭염 예보에 건강을
염려를 한 부인들과 갑작스레 일이 생긴 회원들이 취소를 하는 바람에 6명이 줄었다. 다시 한 번 느
끼는 것이지만 이처럼 많은 인원이 이처럼 더운 날씨에 더군다나 휴가시즌에 함께 산행과 트레킹에
참여한 계기와 원동력은 홍영욱 회장, 이영호 국장과 이성오 대장의 후덕함과 포용력 그리고 평소의
묵묵한 인맥관리 덕분일 것이다. 더불어 여러 적극적인 회원들이 다함께 노력한 것에 기인했을 것이
다. 행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내용)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가 주관(주최)하느냐 또한 매
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산행공지가 나가기 전에 내가 홍회장과 집행부 동기들에게 건의를 했었다. 월악산의 영봉은 무더위
에 참석 인원 모두가 오르기 쉽지 않을 것이니 월악산 국립공원 내에 있는 산들 중에서 산행이 수월
하면서도 경관이 수려하고 조망이 좋은 산을 정해서 오르는 것이 어떠냐고 했었다. 하지만 작은 거인
홍 회장은 국립공원 산행이면 국립공원 내에서 가장 높은 산이나 주봉을 오르는 것이 맞다면서 영봉
등반을 강행하게 되었다. 결국 팀을 두 팀(산행 & 트레킹)으로 운영하여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서 인
원도 대폭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전체적인 참여인원도 늘리면서 산행팀은 월악산의 주봉
인 영봉을 무사히 안전하게 등반하는 쾌거를 이뤘다.
폭염 탓에 건강이 염려되거나 근래에 무릎 등을 비롯한 신체 부위가 온전치 못한 32명의 남녀 회원
(이성오 대장, 이영호 부부, 손기만, 곽상일, 조세핀 여사 등등)은 주로 계곡 트레킹을 하면서 그리 힘
들지 않은 덕주사 마애불까지 걷는 코스(약 3.8km)를 선택했다. 그리고 평소 체력 관리를 꾸준하게
해온 덕분으로 섭씨 36도의 더위 정도는 쉽게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을 갖췄거나 자신의 체력을 테
스트 하는 기회로 삼은 23명의 산우(홍영욱, 이봉태 부부, 이영언 부부, 박원기, 유권영 등등)는 별로
망설이지 않고 월악산의 영봉을 등반하기로 결정했다.
하차 전에 1호차와 2호차에서 미리 코스 선택을 한 덕주사 팀 32명은 덕주골에서 하차를 했다. 시원
한 물속에서 알탕과 족탕을 즐기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서 아주 느긋하고 가벼운 마음과 발걸음으로
출발을 했다. 하지만 트레킹과 산행을 각각 마친 후에 만나서 나눈 대화를 미뤄 짐작컨대 그리 탁월
한 선택은 아니었던 듯도 싶다. 하산 후 트레킹 팀의 얘기를 들어보니 지난 7월의 오대산 선재길에서
처럼 조용하고 아늑한 계곡의 맑고 시원한 물줄기에 몸을 담그고 회원과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가뭄 때문에 부족한 계곡물, 수많은 피서객 등으로 인한 소
란스러움 등으로 인해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무더위에 가파른 산길
을 오르지 않고 편안하게 물속에 발과 몸을 담그고 친구들과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는 얘기를 하는 회원들이 더 많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월악산 영봉을 올라갔다 온 산우
들에게 대단하다는 찬사와 아울러 부러움을 표시했다.
영봉 산행팀도 만족스러워 하는 산우들(거의 대부분)과 매우 힘들고 고생스러웠다는 한두 명의 산우
들로 평가가 엇갈렸다. 평소 체력 단련이 잘 되어 망설임 없이 산행을 스스로 선택한 산우들은 무더
위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불어주는 능선의 바람이 너무 시원했다고 했고, 150M 직벽으로 우둑 솟은
바위 영봉의 모습에 감탄사를 지르면서 기(氣)를 듬뿍 받고 왔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지난달에 다녀
온 오대산의 밋밋한 풍경 보다 월악산의 까칠하고 날카로운 풍경이 더 좋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체력
이 약한 몇몇 산우들은 너무나 힘들고 지쳤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댔다. 모든 것은 준비된
만큼 얻을 수가 있고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으니 누굴 탓할 수도 없이 자신의 선택을 탓해야만 했다.
하지만 힘들어 했던 산우들 또한 값진 경험을 했을 것이고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추억을 만들었을 것
이다.
사람의 성격과 관련해서도 어떤 이는 두루뭉술하고 무색무취 매사 무던한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이
는 까칠하고 색깔이 뚜렷하고 매사 정확한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니 산이나 사람이나 반드시 ‘어떤 것
이 좋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아무리 착하고 정직하고 분명하게 살아가려
고 노력하고 있다고 해도 어차피 누군가에게는 나쁜 놈, 나쁜 년으로 불리고 있을 테니 지나치게 착
하게 어리숙하게 살 필요는 없는 것이리라.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하고, 하고 싶은 말 맘대로 하고 살
아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사람들은 다 알아주고, 좋아해 줄 사람들은 다 좋아해주기 때문이다. 솔
직히 나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의 이목이나 뒷담화는 신경 쓰지 않는 게 건강과 장수에 도움이 된다.
게다가 괜한 것에 신경 쓰다가는 정작 신경 써야 할 사람, 신경 써야 할 부분을 놓치고 말테니까.
[자신의 체력을 테스트 하기 위한 혹서기 산행]
기왕에 월악산의 영봉을 오르기로 했으니 함께 가는 모두가 무사히 즐겁게 오르는 것이 목적이 되어
야만 했다. 나는 홍회장의 특명을 받아 개인적으로 이번 산행의 산행기를 쓰기로 했으니 찬찬히 여기
저기를 둘러보고, 함께 산행하는 산우들의 모습과 이야기들을 카메라와 눈과 가슴과 머리에 담고 와
야만 했다. 그런데 산행 시작 전에 갑자기 홍회장의 특명 하나가 더 내려졌다. 이성오 산악대장과 이
영호 사무국장이 트레킹팀의 인솔자로 산행팀에서 빠지게 되었으니 일일 산행대장을 맡으라는 것이
었다. 기라성 같은 이봉태 부대장과 이기룡 산행고문도 있으니 사양하겠다고 했더니 작은 거인 나폴
레홍 회장께서 단호한 어조로 맡으라고 해서 결국엔 영봉 산행대장을 맡게 되었다.
애초에 딱히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좋은 일(소아암 환우 돕기 모금)도 할 겸 우연히
실행하게 된 10월 2일에 있을 강북5산 산행에 대비해서 참여 산우들과의 훈련 겸 보조도 이번 산행
에서 맞춰보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리고 산행기 쓸 때 참조하려고 산우들끼리 또는 부부가 서로 정
겹게 나누는 대화도 들으면서 오르려고 했는데 순간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다행히 월악산 국립공원
은 작년과 올해 동안 수시로 다녀간 곳이라 정보는 이미 많이 수집되어 있었고, 그림도 머리 속에 훤
하게 그려지는 상황이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산행 출발에 앞서서 홍회장이 인사말과 함께 폭염에 안전산행을 당부하는 말을 했다. 기록의 달인인
치밀한 최용근 홍보수석이 이미 버스 안에서 상세한 코스 설명을 했기에 코스에 대한 설명은 생략했
다. 뒤이어 일일 산행대장인 내가 인사말과 산행 주의사항을 말했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산행
의 달인들이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지만 힘이 들 때는 지체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 자신의 불편함
을 알리라고 했다. 무더위에 억지로 강행하거나 독단적이거나 무리한 행동은 하지 말라는 부탁도 했
다. 그리고 계속적인 오르막이 계속되니 앞 사람의 Pace를 무리하게 좇아가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Pace대로 꾸준히 오르라고 했다. 그리고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너무 벌어지는 걸 대비해서 산악대장
인 나를 추월하는 경우에는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진담 같은 농담을 했다. 선두 그룹은 너무 멀리 앞
서가지 말고 가다가 쉬기 좋은 장소에서는 후미를 기다리면서 휴식을 취하도록 부탁을 했다. 그 동안
나는 산행기 작성을 위한 메모와 사진촬영을 하면서 선두와 함께 후미 그룹을 기다려주려는 목적이
었다.
산길은 어느 산길이나 고도에 비해 산행거리가 짧은 만큼 비탈의 기울기는 세다. 영봉에 오르는 길도
그렇다. 순하다 싶은 돌길을 지나자마자 바로 가파른 돌계단길이 이어진다. 초반에 힘들다고 짧은
시간 내에 몸이 적응을 하기도 전에 휴식을 자주 취하다보면 끝까지 힘이 들기에 30분 정도는 쉬지
않고 꾸준히 올라가겠다는 계획대로 올라가다보니 후미에서 “선두 반 보”라는 외침이 여지없이 들려
왔다. 23명의 인원이 편안하게 앉아서 쉴만한 장소에서 쉬겠다고 전달을 하고는 계속 올라갔다. 땀이
이마에서 쏟아져 내렸지만 호흡도 가빠지질 않고 근육의 뻐근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 꾸준히
오래도록 산행을 한 덕분이었다. 원기와 광호가 나와 한 조가 되어 선두에서 리딩을 했다.
평소에도 꾸준히 관리를 하는 덕분에 체력이 좋은 골프회 회장인 이광호 산우와 보팔로 회장인 박원
기 산우의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 보였다. 이광호 산우는 골프는 물론 산악마라톤으로 다져진 체력으
로 산행 때마다 항상 선두에 서고, 두주불사 타고난 천하장사인 박원기 산우 또한 불수사도북 강북5
산 훈련을 겸한 이번 산행에서 강철 체력을 바탕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선두를 놓치지 않고 역주를 했
다. 된비알이 계속 되면서 산우들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아래에서는 ‘선두 반 보!’라는 외침이
자주 들렸다. 내 뒤를 바짝 따라오는 박원기 산우의 숨소리도 점점 거칠어졌지만 언제나 쾌활하고 힘
있고 분명한 그의 말투에는 변함이 없었다.
모두가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에서 산우들을 기다렸다. 원기, 광호가 바로 따라서 올라오고,
과일을 꺼내 나눠 먹고 물을 마시는 동안 무겁고 mystery(?)한 큰 배낭을 메고 명철이가 올라왔다. 그
뒤로 힘들어하는 권영이가 의외로 빨리 도착했고, 체력 좋고 힘 좋고 날렵한 기룡이 부부, 모처럼 혼
자 외롭게 나온 앵무새 아빠 환식이가 조용히 사뿐히 올라왔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현방이와 용근
이가 손을 흔들며 여유롭게 올라왔다. 뒤이어 미소가 아름다운 관재, 우직하고 담담한 규호, 아내의
체력들이 더 좋은 우장 부부와 봉태 부부가 올라왔고, 뒤이어 부인의 가방까지 가슴에 메고 영헌이가
몹시 힘들어 하는 아내 송여사와 함께 올라왔다. 뒤이어 무릎 상태가 좋지 않은 홍 회장이 미소를 지
으면서 도착했다. 창덕이는 힘들어 하는 윤여사 때문에 함께 후미로 처졌고 아내 윤여사는 듬직한 도
우미이자 체력이 좋은 태환이의 에스코트를 받고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모두가 모여 앉아서 가지고 온 과일, 음료수 등을 나눠 먹고 마시면서 온갖 수다를 다 떨기 시작하는
데 그 중에 제일은 역시 박원기 산우였다. 체력과 성격 좋고 목소리 크고 능청 맞고 유머러스 하니 언
제 어딜 가나 인기 만점에다가 분위기 메이커인 친구다. 권영이가 강북5산 종주에 원기도 참여했다
는 소식을 알고 원기의 체력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었던 모양이었다. 권영이 입장에서는 원기가 거의
매일 두주불사로 술을 마시니 엄청나게 힘들다는 24시간 산행을 해낼 수 있겠느냐면서 우려 반 의심
반으로 버스 안에서 확인해 본 것이었는데 원기는 그게 조금 섭섭했던지 계속해서 권영에게 농을 걸
면서 자신의 체력에 이상이 없음을 눈으로 확인 시켜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마치
유치원 다니는 골목대장의 모습 같아 보여서 의문을 가졌던 권영이도 웃고 나머지 우리들도 다들 웃
었다.
가장 늦게 도착하며 몹시 힘들어하는 윤석자 여사를 보면서 내가 창덕에게 농담을 건넸다.
“창덕아! 이제 나이도 있는데 윤여사님 밤에 고만 괴롭혀라!
너한테 낮밤으로 시달리니 저렇게 힘들어 하시잖니! ㅋㅋㅋㅋ”
“아니야. 그게 아니라 텃밭에 잡초 제거한다고 요 며칠 낫질을 너무 많이 해서 그래! 나도 요새는 밤
에 안 괴롭혀~~!! ㅎㅎㅎㅎㅎ”
“그렇게 힘든 일은 머슴인 네가 해야지 왜 윤여사님이 하시게 하니?”
“내가 하지 말라고 했는제 자발적으로 한 겨~~! 난 죄 없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쉽게 하지 못할 짖궂은 농담들도 동기생이자 친구들이니 아무 거리낌 없이 자연
스럽게 할 수가 있어서 편하고 좋다. 물론 그런 무례(?)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동기생이나
동기생의 부인이라고 해도 조심을 해야 하는 게 옳다. 하지만 내 후임 산악대장으로서 울릉도, 독도
여행 때부터 끈끈한 인연을 맺은 창덕이와 윤여사님은 그저 정겹기 그지없는 사이다.
날씨는 푹푹 쪄대도 산을 정말 좋아하고 산행을 정말 즐기는 23명의 산우들이 함께 오르내리는 것이
니 땀이 줄줄 흘러 온 몸을 적셔도 즐겁지 아니할 이유가 없었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힘든 된비알
코스에서도 짜증을 내거나 침묵 시위(?)를 하는 산우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게다가 능선길에서 잠
시 불어주는 바람에도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시원하다고 감탄사를 내뱉는 산우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함께 오르는 산우들을 위한 배려와 사랑이 포함된 점심 도시락]
휴가철에 광복절 연휴 첫날이라 고속도로 초입에서부터 차량 지체가 되어 도착 예정 시간 보다 1시
간 이상 착오가 생겼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선데다가 12시가 훨씬 넘은 시각(12:40)이라 다들 허기를
느끼면서 적당한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마침 송계 삼거리에 넓직한 휴식처가 있었다. 23명이
빙 둘러앉아 식사와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배낭에 들어 있는 음식과 과일, 음료수들을 꺼내 놓고 삼삼오오 둘러앉기도 하고, 서로 마주 보거나
둘이 나란히 통나무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산우들의 음식들을 보니 너무나 간단하고 소박한
내 점심밥은 꺼내놓기가 창피할 정도였다. 아침에 아내에게 그냥 간단하게 조그만 주먹김밥을 만들
어달라고 해서 락앤락 통에 넣어가지고 왔기 때문이었다. 내 바로 앞에 자리 잡은 명철이는 산우들과
함께 참치 야채비빔밥을 해먹겠다면서 얼린 참치고기와 새싹, 야채, 초장은 물론 막걸리, 캔맥주 등
을 차갑게 아이싱까지 해서 가져왔다. 원기도 산에서 함께 둘러앉아 먹겠다고 냉매제를 넣은 가방에
족발과 각종 양념, 그리고 삭힌 홍어회와 재료를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술 한 통(1.8리터)을 가지고
왔다. 부부가 함께 참석한 봉태, 영언, 우장, 기룡, 창덕이도 배낭에서 다양한 먹거리들이 쏟아져 나왔
다. 텃밭에서 기른 싱싱한 야채들, 부인이 맛있게 담근 반찬들, 그리고 건강식 현미밥 등등.
이곳저곳에서 이 친구 저 친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음식을 권하는 정겨운 목소리가 마치 영봉
아래 능선에 울려 퍼지는 교향곡과 같았다.
“친구야~~ 이것 좀 먹어봐! 이거 정말 맛있는 거다.”
“양 대장님, 이것 좀 드셔 보세요. 텃밭에서 기른 고추에요!”
“홍 회장! 참치 새싹 비빔밥 좀 먹어봐! 시원하고 새콤달콤하네!”
“광호 회장님! 족발 좀 드셔보세요! 술도 한 잔 하시고!!”
“규호야! 멀리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이것 좀 함께 먹어봐!”
“아이고... 막걸 리가 아직 다 안 녹았네! 아직 슬러시 상태네!”
“슬러시 막걸 리가 더 맛있네 그려~~ 명철아, 메고 오느라 고생했다.”
“박원기 회장, 대체 그 담근술은 재료가 뭔가???”
“크크크크~ 한 번 알아 맞춰 봐!!”
“술이나 밥은 너무 많이 먹지들 마시게! 아직 영봉까지 오르려면 급경사 계단길을 올라야 하니
말이야!”
“식사들 다했으면 과일들도 좀 드세요! 포도랑, 방울 토마토... 방울 토마토는 우리 텃밭에서 유기농을
가꾼 거랍니다.”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나오는 산우들의 푸짐한 점심 메뉴에 내가 가지고 온 꼬마주먹김밥은 할 말을
잊은 채 조용히 락앤락 통 속에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나마 가지고 온 햇사과와 차가운 얼음물 덕
분에 영봉 정상 아래서 잠시 어깨를 펼 수가 있었다.
[드디어 영험한 봉우리인 영봉에 오르다]
점심을 먹고 난 후 곧 바로 영봉의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다보면 자칫 신체에 이상이 올 수도 있기에
식사를 마친 후에도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거나 휴식을 취하면서 안전을 도모했다. 힘이 들어 영봉
등반을 포기하고 휴식을 취하시겠다는 송영순 여사님과 윤석자 여사님에게 배낭을 맡겨 놓고 오후
1시 30분이 되어 다시 영봉을 향해 출발했다. 안전을 위해 산행 속도는 최대한 천천히 늦췄다. 원기
를 포함한 몇몇은 체력단련을 하겠다면서 일부러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영봉 봉우리까지 올라갔
다.
낙석방지 철조망이 머리 위로 둘러쳐진 철제길을 지나 명품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는 절벽 옆의 계단
길을 오르자마자 영근이가 카메라와 비디오를 준비해놓고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 식사하는
자리에서 보이지 않아 어디서 점심을 먹고 있나 하고 걱정을 했었는데 책임감 강한 영근이는 혼자서
점심을 후다닥 해치우고서는 배경이 근사하고 멋진 장소를 미리 물색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
던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귀찮다면서 꼴불견을 보이며 이기심을 발동하는
데 영근이 이 친구는 아래 위를 오고 가면서 사진을 찍어주고, 그걸 편집하고 카페에 올리기까지 하
는 참 멋진 친구다. 오래 전부터 꾸준히 노숙자들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실천
한다고 하니 희생과 봉사와 헌신이 몸에 깊이 배인 친구다.
영봉 오르는 길은 예전에는 가끔 조난사고가 발생할 정도로 가파르고 위험했던 길이었다. 하지만 지
금은 비교적 안전한 철제 계단길이 놓여 있어서 비록 힘은 들지만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는 길이 되
었다. 영봉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길은 무더위와 함께 산우들을 힘들게 했지만 난간의 좌우 또는
상하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에 다들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와~ 오대산 보다 멋지다~!”
“명품 소나무가 정말 아름답다!”
“계단길이 없던 시절엔 여길 어떻게 올라왔지??”
“날씨가 맑으면 정말 조망이 좋겠다!”
“절벽에 자란 소나무가 참 멋있다. 그런데 충주호는 어느 쪽이지?”
이런저런 감탄 어린 대화를 나누면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니 드디어 영봉이 눈앞에 보였다. 맨 먼
저 오른 광호가 반대편 봉우리에 서 있는 나를 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기룡이 부부는 동기들과 함
께 오르겠다면서 정상 아래 나무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다들 힘들어 하면서도 끝까지 포기 하지 않고 영봉의 정상에 올랐다. 아쉬움이 있다면 폭염의 열기에
조망이 그리 깨끗하질 못한 것이었다. 공기가 차고 맑을 때에는 일대에서는 영봉이 가장 높은 봉우
리이기에 충주호가 내려다보이는 것은 물론 멀리 소백산을 비롯한 백두대간 줄기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처럼 조망 풍경이 무척 아름다운 곳인데 그게 좀 아쉬웠다. 하지만 21명의 산우들이 영
봉 정상에 올라 주변을 응시하면서 풍광을 즐기고, 단체 사진과 부부, 개인 사진을 찍는 즐거움을 마
음껏 누렸다. 즐거워하는 산우들의 모습을 찍기 위해 다시 건너편 봉우리로 올라가서 사진을 찍었다.
정상에 선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고 즐거운 모습들이었다.
정상에서의 시간을 각자 충분히 보낸 후에 혼자 혹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하산을 시작했다. 식사를
했던 장소에 가장 먼저 도착해서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고, 무릎 연골
이 시원찮아 조심스런 산행을 하는 홍 회장이 도착하면서 일일 산행대장인 내게 산 아래에 있는 이성
오 산악대장의 말을 전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 되었으니 원래 계획 했던 덕주사 방향으로 하산 하지 말고 원점회귀를
하라고 하네!”
“식당 예약 시간도 있고, 귀경 시간도 있으니 조금 서둘러야겠다.”
마지막 산우가 다시 휴식처에 도착하고 나서 간단한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부지런히 하산을
시작했다.
올라올 때 힘들어 했던 윤석자 여사가 가장 먼저 앞장을 섰다. 무릎이 아픈 홍 회장은 후미에서 컨디
션을 조절해 가면서 몇몇 산우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꾸준한 속도로 하산을 했다. 강북5산 훈련
및 체력 테스트를 하는 원기는 빠른 속도로 나와 함께 하산을 했다. 제법 너른 공터에서 첫 번째 휴식
을 취하고 난 후에는 각자의 Pace나 몸 상태에 맞춰서 하산하기로 했다.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을 동
시에 똑같은 하산속도로 맞추게 되면 서로가 힘들고 피곤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먼
저 후다닥 뛰어 내려가 혹시나 함께 둘러앉아 족탕이나 알탕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려고 한 이유
였다.
가파른 산길이 막 끝나는 지점에 물이 고여 있는 걸 보고 계곡으로 들어섰다. 제법 맑은 물이 담겨 있
는 웅덩이가 2개가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발을 담그고 있을 때 발자국 소리가 들려서 외쳤는데 반
응이 없었다.
“원기야~~!! 여기 알탕할 만한 장소가 있다!”
“이리 내려와!!”라고 서너 번을 외쳤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결국 나 혼자 상의를 벗고 몸을 씻어내고 있다가 또 다시 일행들을 불러봤다. 하지만 올라갈 때 본
메말라버린 계곡 때문에 알탕은 전혀 생각도 기대도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출발지 부근인 동창교에
서 씻으려고 한 것인지 다들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덕분에 혼자 팬티까지 벗고 온 몸의 땀을 시원하
게 씻어냈다.
몸을 닦고 옷을 다시 입고 하산길로 다시 접어들려니 권영이를 비롯한 후미 그룹이 내려오면서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우와~~ 알탕 할 곳이 있었어? 옷도 갈아입고 깨끗해졌네?”
“서너 명 정도 앉아 씻을 수 있는 웅덩이가 있더라구!”
“근데 하산 시간이 지체 되어서 다들 함께 할 여유가 없었네.
혼자만 씻어서 미안스럽게 되었네!”
땀이 줄줄 흘러 온 몸이 젖은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혼자만 부리나케 뛰어 내려와서 혼자만 알탕을
했으니 말이다. 산행대장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식수가 떨어져서 목 말라하는
권영에게 시원한 얼음물을 제공했고, 영봉이 훤하게 올려다 보이는 포토 존에서 친구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찍어 주었다.
자광사를 다시 지나고 동창교 근처의 마트에 이르니 일정이 우리 보다 일찍 끝난 트레킹 팀의 천원이
가 시원한 얼음물을 준비해 놓고 내게 내밀었다. 목은 마르지 않았지만 우정의 샘물을 맛있게 들이켰
다. 뒤이어 내려오는 권영이에게 물병을 전달하며 마시라고 했다. 트레킹 팀원들이 산행 팀원들에게
무더위에 고생이 많았다면서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거나 물병을 건네면서 목을 축이라고 했다. 조
세핀 여사님은 얼음이 섞인 스포츠 음료수를 건네면서 마시라고 했다. 헤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도 않
았건만 무척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정 많은 회원들 덕분에 마트 앞 잔디밭 휴식처가 떠들썩해졌
다.
계곡에 물이 없어서 몸을 씻지 못한 회원들은 마트의 뒷마당에 있는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대충이라
도 땀을 씻어내고 버스 안에서 옷을 갈아입기도 했다. 뒷풀이 식사 시간 때문에 급해진 이 대장과 이
국장의 목소리가 다시 크게 울렸다.
“출발 합니다. 버스에 탑승해 주세요!”
“식사하러 갑시다!”
“탑승!!!! 빨리 빨리!!!”
[언제나 신나는 뒷풀이, 다시 두 팀으로 나뉘다. 두주불사 & 무주공산]
서둘러 버스에 올라 느티나무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먹어본 지 꽤나 오래된 음식 중에 하나인 송어회
비빔밥이 주메뉴라고 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우리나라 최초로 송어양식에 성공했다는
곳이 덕유산 부근 어느 양식장이었다. 수온이 차고 수질이 깨끗해야만 자랄 수 있는 송어인지라 그
당시 심산유곡인 덕유산 깊은 계곡물을 이용하여 송어 양식에 성공을 했었다. 양식장이 고향 마을
근처라 가끔 고향을 방문 할 때에는 아버지께서 송어회를 사주셨다. 그때도 지금처럼 콩가루를 뿌려
먹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짙은 핑크 빛깔의 송어회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과 그런 나를
사랑스런 눈길로 쳐다보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누군가 ‘추억이 깃든 음식이 가장 맛있다!’라고 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위인인지 시인인지 소설가인
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민물회가 입에 맞질 않아 젓가락을 잘 대지 않은 옆 테이블
산우들 덕분에 나는 아버지와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어 있는 맛있는 송어회를 배 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이래저래 고마운 친구들이다. 나를 위해 남겨 놓았으니 말이다. ^^
한동안 조용했던 산행 뒷풀이가 55명의 대부대기 출동을 한데다가 막강한 ‘두주불사’ 선수들과 끈끈
함이 최강인 보팔로 동호회, 기갑 출신 동기들이 참여를 했으니 여기저기에서 ‘위하여! 위하여! 위하
여!’라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런 경우 술 못 마시는 회원들인 ‘무주공산’ 선수들은 그야말로 찬밥
신세가 되고 만다. 술 마실 줄 아는 회원들도 자칫 하면 과음을 하게 되어 인사불성이 되기도 하고
꼭 인사불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몸이 몹시 힘들어지니 피곤한 몸을 핑계로 은근슬쩍 피하기도 한다.
나도 이번에는 시원한 소맥 4잔과 소주 3잔으로 기본만 마시고 건강을 핑계로 술 권하는 친구들을
피하고 말았다. 한편으론 즐거운 자리이니 만큼 마음껏 취하고 싶기도 했고, 두주불사 기분파인 친구
들과 어울리고 싶기도 했지만 당장 내일 다가올 피곤함과 나른함이 걱정이 되었고, 또한 그동안 열심
히 관리해온 몸이 축나는 게 아깝고 억울할 것이 분명하기에 두주불사 친구들의 진하면서도 살벌한
(?) 눈길을 피해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고 말았다.
드디어 여기저기서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주량이 맞는 친구들, 죽이 맞는 친구들, 인연
이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는 친구들, 대화가 통하는 친구들, 동호회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웃고 즐기
고 어깨 두드리는 모습들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르고 이젠 눈이 슬슬 풀려가
는 친구들의 숫자가 늘어날 무렵, 예리하게 지켜보던 이영호 사무국장이 홍회장에게 다가와 마무리
할 시간을 상의했다.
“흥이 무르익고 있으니 30분 정도 더 있다 7시에 마치지?”라는 내 말에 이 국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에도 통풍 때문에 가능한 술을 자제하고 있는 이 국장은 정기산행이나 특별산행 때에는 행사의
원활하고 정확한 진행을 위해서 술을 입에도 대질 않고 있는데 내가 30분을 더 있자고 하니 놀랬을
만도 했다. 홍회장이 10분 정도만 더 시간을 주고 6시 40분에 마무리를 하자고 했다.
뒷풀이는 오후 6시 40분에 종료가 되었고, 일행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 단체 사진 촬영을 했다. 기분
좋게 취한 회원들의 장난기 어린 언행 덕분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성격 급한 이 대장은
빨리 찍고 귀경하자고 하고, 성질 느긋한 충청도 양반인 원기와 기훈이는 성오를 놀리는 듯한 행동으
로 일행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단체사진을 찍은 후에 1호차 팀과 2호차 팀으로 다시 분리가 되어 귀가를 해야 하기에 탑승 전에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중간 휴게소에서 다시 JOIN을 하느냐고 이 국장에게 물으니
그런 계획 없다고 했다.
1호차에 몸을 싣고 약간의 취기와 피로감을 느끼면서 좌석 등받이를 누이고 편안한 자세로 출발을
했다. 뒷좌석이라 에어컨이 잘 나오질 않아 후텁지근 했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 했다. 다행히 상행길
고속도로는 지체나 정체가 없었다. 귀경하는 버스에서 사회를 맡은 용근이가 첫 산행이거나 또는 오
랫만에 산행에 참석하거나 해서 낯이 익숙치 않은 동기생들에게 인사를 부탁하는 과정에서 해프닝이
생기고 말았다. 게다가 뒷풀이 시간 때 엄청난(?) 양의 알콜을 흡입한 원기가 동기생들을 위한 건강
상식을 전달하겠다면서 마이크를 오래 잡는 바람에 진행을 맡은 용근이와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마이크를 쥔 자와 뺏으려는 자의 실랑이라고 해야 할까? 병권이 아닌 마이크권을 가진 자와 뺏으려
는 자의 실랑이는 다행히도 꽤나 우습고 재미 있었다.
좌석을 맨 앞 용근이 옆으로 옮겨 앉았다. 밀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순간순간 졸았다. 산행의 피
곤함과 알콜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잠시 동안의 졸음에도 기분은 맑아졌다. 이런저런 해프닝도 있었
지만 조금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그런 것들이었다.
버스는 가장 먼저 죽전 정류장에 도착을 했고, 내가 가장 먼저 홀로 하차를 했다. 손을 흔들 사이도
없이 버스는 빠르게 출발을 해버렸다. 뭔가 아쉬움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은 보이지 않았고 저녁
바람이 조금씩 불었지만 여전히 후텁지근했다.
[에필로그]
“운명의 틀을 선택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하지만 그 안에 무엇을 채워 넣을 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 다그 함마르셀드 -
귀경길 버스에 있을 때 ‘딩동’하고 문자가 하나 들어왔다. ‘책 속의 한 줄‘이라는 스마트폰 앱에서 보
내주는 글이었다.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었다. ’운명, 틀, 나, 우리‘
비록 운명은 내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지만, 조직이라는 ‘틀’은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는 것
이리라. 아... 아니다. 어쩌면 나와 내 동기생들이 ROTC가 된 것도, 산을 좋아하는 열혈 산우들이 녹산
20 산악회의 회원이 된 것도 어쩌면 정해진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정해진 운명처럼 나를 포함
한 우리 산우들은 이미 ROTC 20기라는 틀, 그리고 녹산 산악회라는 틀(조직)을 형성하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수많은 틀 속에 갇히기도 하고, 매우 적극적인 사람이라면 그러한
틀을 스스로 형성하고 만들어 리딩까지 해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틀에 속하거나 형성하고 있느
냐에 따라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는 것일 게다.
“이미 시작했다면 열심히 성실하게 즐겁게 하자!”는 걸 모토로 삼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동기생들이
있다. 참 멋있고 대단한 동기생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이건 취미이건 인간이건 간에 ‘아니다!’ 싶
거나, 하다가도 너무 싫으면 포기하거나 관계를 끊으면 그만인 것으로 쉽게 생각하고 결정하는데 그
런 친구들을 보면 감탄을 하면서 무척 부럽다.
이왕에 시작한 것이라면 조화롭게 잘 해보고자 노력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들의 행동일 것이다. 나
또한 가능한 그 틀(조직) 속에 융화가 되면서 내 능력껏 봉사와 헌신을 하면서 잘 어울리고자 노력하
는 게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탓인지 남 탓인지 아직까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러한 나의 사고방식에 변화가
오려고 하는 조짐이 보인다. 나이 탓일까? 아니면 세상이 점점 힘들어지고 어려워지고 각박해지는
탓일까?
“왜 괜히 쓸데없이 내가 나서? 잘 해봐야 본전인데?”
“괜히 나섰다가 뒷담화의 주인공이나 되기 쉽상인데...”
“세월 가면 잊혀지는 게 세상 진리인데...”라는 생각들이 가끔 들기도 한다.
아무튼 어떤 사람들은 그 틀 안에 무엇 하나 제대로 채워 넣지도 않으면서 불평불만만을 늘어놓거나
잇속만 챙기려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손수건 한 장 생기는 거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돌보고 관리하고 헌신하기도 한다. 길게 가지 않는 나쁜 틀 속에는 전자
들이 많고, 길게 오래 즐겁게 가는 좋은 틀 속에는 후자들이 당연히 많을 것이다.
귀경하는 버스의 맨 앞좌석에 앉아서 10년을 함께 해 온 녹산 산악회라는 틀, 그리고 그 틀을 형성하
고 있는 나와 동기생들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생각에 잠긴 동안 버스는 어느 새 죽전 정류장
에 도달했고, 이젠 눈빛만 보면 생각을 알 수 있는 동기들과 산우들에게 인사를 마친 나는 가벼운 배
낭을 들고 홀로 하차를 했다. 다행히 저녁 바람은 낮 보다는 많이 시원해져 있었다. 좀 더 분발해야겠
다는 생각을 했다. (끝)
2016. 8. 15. (월)
71주년 광복절 오후
양 효용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악의 속살에서 노닐다. (0) | 2016.10.17 |
---|---|
불수사도북 강북5산 종주산행 후의 단상 (0) | 2016.10.05 |
국립공원 순례 - 1차 산행 [소백산 눈꽃산행] 산행기 (0) | 2016.01.10 |
일본 100명산 초카이산 등반기 (0) | 2015.09.19 |
봉화 청량산, 축융봉 산행 (0) | 2015.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