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낙동강 원동역을 지나며...

에픽하이 2015. 7. 21. 14:44

 

 

젊은 시절의 나는 경부 하행선을 타면 항상 진행 방향 오른쪽 창가에 앉았어요. 당신도 앞으론 그 자리에 앉아서 가보세요.

 

어린 시절 추억 가득한 역광장 지나 개찰구 지나 기차 늘어선 플랫폼 들어서면 가슴 무척 설레였었죠.

 

봄 가을의 오후 3시발 열차, 여름의 오후 4시발 열차, 겨울의 오후 2시발 열차는 황혼 밀려들 때쯤 청도역 지나고 낙동강 줄기가 나타나기 시작하죠. 밀양 자갈밭 철교를 지나며 맥주 한 캔 따마시면 참 행복했죠.

 

삼량진역, 아늑한 분지에 들어앉은 작은 도시 이제 보석을 품에 가득 담을 준비를 하세요.

 

당신 가슴으로 낙동강이, 그리고 붉은 석양이 밀려들 거에요. 눈 앞으로 차가운 겨울비, 아련한 봄 아지랭이, 뜨거운 여름 소나기 밀려와 창가 흐려지면 당신의 하얀 손으로 얼른 닦으세요.

 

풍경의 클라이막스는 원동역이에요. 혹시 기차가 너무 빠르다면 역무원에게 미리 말하세요. 원동역에 잠시 쉬어가자고. 혹시 역무원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면 그냥 배시시 웃음만 지으세요.

 

조그만 역뜰에 초록 키작은 사철나무랑, 갈대랑, 모래사장이랑, 감나무랑, 아무런 경계도 아무런 의심도 없이 흐르는 강물을 보며... 저게 기차역이야... 나룻배 선착장이야... 라고 느낄 때쯤... 강물에 넋을 놓고 보고 있는 당신 가슴과 눈과 얼굴 은 너무 싱싱해서 발그래한 사과처럼 물들고 말거에요.

 

부산까지 가는 기찻길에 만약 낙동강이 없었다면, 아마 바이올린 없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곡... 섹스폰 없는 째즈곡을 들은 것 같을 걸요.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 어느 인생에나... 어느 기차에나... 변곡점 또는 정점이 있죠. 지속되는 듯 싶지만 순식간에 변화하고 달려온 길을 반영하며 앞으로 가야만 하는 길에 순 응하는... 그런 기억과 예측의 점들이 풀렸다가 감겼다가 몰려 왔다 몰려갔다 마치 눈 앞의 풍경처럼 흘러갑니다.

 

초등학교 시절, 할머니 따라 나선 긴 기차여행에서 기관사와 여객전무와 운 좋으면 날 예뻐하는 여승무 원도 만났어요. 나 어릴땐 여행의 종착지 부산역에 밤기차가 서면 밤증기 하얗게 피어나는 속에 푸른 작업복 정비사가 기차 바퀴와 그 옆에 붙은 박스를 망치로 땡땡 두드 렸어요. 나도 그때 그 사람처럼 망치로 기차바퀴를 두드리고 싶었어요.

 

그 후 서울역 가는 길에 찐빵집이 생겼더랬어요. 줄지어선 찐빵솥을 보며 마음까지 푸짐해지고 따뜻 해졌어요. 부지런한 아주머니가 무거운 가마솥 뚜껑을 끄르르 르 소리내어 열면 기차역과 잘 어울리는 수증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 는 모습에 가끔은 집 떠나는 심정이 애잔하고 아득했어요. 수증기처럼 돌아오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 상하게... 아마 혼자 떠나는 여행이어서 그랬나보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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